‘주일성수’의 거짓과 진실…

주일 성수…?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교회에서 높은 직분을 얻기 위한 절대조건이며, 교인의 신앙 수준을 가늠하는 준엄한 평가 기준이 된다. 그러나 주일 성수와 십일조가 과연 신앙의 성숙을 증명하는 정당한 방법인가?

물론, 영적인 신앙 상태를 가시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교회에 잘 나오고, 열심히 그리고 많은 헌금을 하는 교인들은 나름 충성스러운 교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외형적 기준은 자칫 본질에서 벗어나 형식 중심의 왜곡된 신앙을 옹호하는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다. 주일 성수라는 말의 본뜻이 ‘봉사’라는 명분으로 일요일 내내 교회에서 지내는 것이 아닐텐데, 실상 주일 성수의 강요는 만사를 제치고 교회 출석을 절대 가치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삶과 신앙의 현장에서 정작 중요한 일들을 모두 제쳐두고 ‘단지 주일이기 때문에’ 건물 교회당에 나와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이 성경적 신앙의 본질일까, 아니면 주일에 영적으로 보다 가치로운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기독교인들은 기독,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을 믿는 자들이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자비가 제물보다 귀하다…, 사랑이 제사보다 소중하다”고 말씀하시고,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와 다툰 일이 기억나거든 형제와 먼저 화해하고 나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다시 말하면 주일에 예배드리는 형식적 의례보다 말씀과 계명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먼저라는 의미이다.  이미 오래 전에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제시하신 예수는 오늘날 성도에게 주일의 바른 의미를 예시하셨다.

요컨대 예수는, “너희 소중한 양이 구덩이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고 구하지 않겠느냐?” 라고 되물으시며 형식적 율법주의에 빠진 유대인들의 위선과 오류를 거침없이 질타하셨다. 따라서 예수는 안식일에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 손 마른 자의 손을 펼쳐 주셨으며, 병든 자의 병을 고쳐주셨다.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안식일을 바르게 지키는 올바른 순종이라는 가르침이다.

주일성수를 말하면서 “주일이 성경적인 절기인가”라는 논쟁, 이를테면 주일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부정적인 관점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 그리고 공동체의 사역을 위해 기도와 예배, 그리고 성도의 교제 등, 공동체의 종교활동이 필요하다면 주일을 제정하고 그 날을 구별하는 것은 분명 정당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일에 모든 일을 마다하고 단지 교회에 출석해서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이 예수 시대의 올바른 신앙태도이며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되는 정당한 주일성수의 의미일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제도이며 정해진 규정이기 때문에 지켜야 된다면,  기독교의 주일성수는 예수께서 외식이라며 엄히 질책하셨던 유대 율법주의의 ‘안식일 제도’와 본질상 차이가 없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 의사가 위중한 환자를 버리는 것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주일을 지키기 위해 사업가가 엄청난 손실을 입으면서 사업을 포기하는 것보다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아프고 고통스러워 울부짖는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사랑이 최고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닐까?

주일에 반드시 영업을 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사업장에서, 또는 다른 요일을 정해  예배드리고, 주일에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사라면 아픈 자의 생명을 돌보며 병원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오히려 주님이 원하시는 주일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신앙의 본질은 ‘사랑’이라는 분명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주일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기도와 찬송, 예배의 중요성을 무시하려는 의도 또한 결코 아니다. 주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물질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일주일에 하루, 세상의 유익과 온전히 구별된 하루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성을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최소의 시간이다.

주일성수를 비판하며 은연중에 주일의 종교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욕조의 더러워진 물을 버린다며 욕조에 있는 아기까지 내다버리는” 치명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주일성수가 아니라 ‘주일성수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다.

종교주의적인 속박, 이를테면 교인들을 교회당에 모아두고, 교회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주일성수를 강요하는 것은 분명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말씀’의 본의를 왜곡한 이단적 잣대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며 예수를 죽이고자 골몰하던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예수는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에 거룩을 빙자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주일에 교회 출석부에 도장 찍기 위해 세상만사를 제치고 예배당에 모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일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1)세속적 가치를 떠나 영적으로 온전히 구별된 하루를 보내고  2)그리스도의 거룩한 계명인 사랑을 지켜 실행하는 것이 주일 성수의 참된 의미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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