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의존신앙’은 이교도의 맹신이다!

‘목사 의존신앙’은 이교도의 맹신이다!

목사의존신앙이 허접한 맹신이라는 것쯤은 성경에 최소한의 기초지식이 있다면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일반상식’이다. 요컨대 성도는 목사의 하수인이 아니며, 비루한 ‘목사 의존신앙’은 한국교회 대다수 교인들의 영혼과 골수에 깊이 새겨진 ‘영적 노예근성’에 다름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님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의 각 부분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정작 ‘성경의 사람’이라는 기독교인들이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성경에 뚜렷이 기록했듯이 “성도는 교회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즉,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바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다시 오신 ‘곳과 것’이 바로 교회다.

그렇다면 주께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메시지는 뚜렷하다. 너희, 곧 성도가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를 운영하는 능동적인 운영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체가 살아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죽은 시체이듯이, 교회의 지체인 성도가 살아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이른바 ‘교회’의 지체로서 성도는 기독교의 유일한 ‘성직’이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성도의 직분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직이 되기 위해서는 성도 각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교회에 오신 주께서 “모든 성도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4-8)

몸의 지체가 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것처럼 성도는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를 지녔다는 본문의 메시지에 주목한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차별적인 은사를 주셨다는 ‘차별적인 은사론’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그에 합당한 은사를 주셨다는 ‘일반 은사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은사에 관한 메시지에서 중요한 핵심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은사이든 주께서 은사를 주셨으면 성도는 받은 은사를 남김없이, 그리고 주저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를 기억하고 있는가? 혹시 잃을까 걱정해서 한 달란트를 고이 간직했던 종이 주인의 소유를 소중히 여겼다고 칭찬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남김없이 사용해서 결실을 맺으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죄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엄히 질책을 받았고, “멀리 쫓겨나서 이를 갈며 슬피 울리라”는 저주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주께서 은사를 주셨으면 성도는 주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되, 남김없이, 그리고 주저 없이 사용해야 한다. 오늘날 교인들은 주께서 주신 은사의 의미와 주께서 명령하신 성도의 사명을 좀처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사제나 목사에게 맹종하는 ‘성직자 의존 신앙’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퇴행한 탓이다.

목사의 불의와 교회의 타락에 저항하며 ‘새로운 교회’를 세우겠다고 단단히 다짐하는 사람들조차 교회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머리 싸매며 고민하는 것이 바로 목사를 구하는 문제이다. 목사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영적 무력증’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목사는 나름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목사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목사가 있어야 비로소 교회이며, 목사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는 저급한 열등의식, 이른바 영적 노예근성은 교인들의 의식 저변에 깊이 박혀있는 ‘목사 의존신앙’에 기인하는 것이며, ‘목사 의존신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결국 목사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이교도의 맹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목사가 언제부터 생긴 직분이며, 도대체 어떤 직분이기에 주께 의존하듯이 목사에게 하릴없이 의존하려고 하는가? 성경에 분명히 명시했듯이, ‘유일신’ 신앙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 신앙은 근본적으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성도는 선택받은 새 언약의 백성인 동시에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성도 외에 다른 성직이 있을 수 없으며, 지성소의 휘장을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도가, 성도의 이름으로’ 담대히 주께 나아갈 수 있다.

예수 시대에 사제나 목사는 특정한 성직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자인 목사의 중재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목사를 ’높은 자‘로 섬기는 맹종이 마치 그리스도 신앙인 양 진실을 왜곡하는 주장은 반성경적인, 그리고 반기독교적인 배역과 무지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목사 의존신앙은 ‘이교도의 타락한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교인들이 목사에게 맹목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목사가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서 감히 반성경적인 ‘성직자’의 탈을 쓰고 교만과 탐욕의 길을 걷고 있다. 교회는 목사의 절대 권력에 의해 타락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목사 교회’의 타락은 어리석은 교인들의 맹신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목사가 만든 ‘사이비 교회’에서 목사의 하수인이 되려 하지 말고 성도는 그리스도 신앙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당당히 교회를 세우고, 스스로 교회가 되라. 그리고 성도가 주 안에서 하나 되어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다스려라(‘다스리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섬기다’이다). ‘오직 주님’의 뜻에 따라, 교회의 몸이며 머리이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교회의 사명을 준수하라.

“교회를 세우라”는 주님의 명령에 모름지기 성도가 앞장서라. 목사를 주군으로 모셔 목사교회를 만들려 하지 말고, 성도가 마음을 다해 진정한 교회를 세운 다음에 사역자로 목사를 불러도 늦지 않다. 사역자는 교회에서 상전 행세하는 담임이나 당회장이 아니라 성도를 섬기는 ‘교회의 일꾼’이다.

이는 목사라는 직분을 비하하거나 허투루 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말씀하신 교회를 바로 세우는 당연한 전제일 뿐이다. 내가 말하려는 요지는 성도가 교회를 세울 수 있으며, 주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지체인 성도에게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능히 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에게 의존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그리고 신앙은 타락하고 변질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한다. 교회는 성도이며, 성도는 거룩한 교회를 섬기는 ‘유일한 성직’이라는 영적 자긍심을 절대로 잃지 마라! 스스로 목사의 종이 되려는 종교적·영적 노예근성이 그리스도 신앙을 비루하게 만들고, 주님의 교회를 속절없이 타락시킨다.

분명히 말하건대 목사가 교회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마치 주인인 양 교인들을 종처럼 지배하는 오늘날 목사교회는 결코 주께서 말씀하신 ’교회‘일 수 없다. ‘너희’, 즉 성도가 교회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이다. 지체는 오직 ‘머리’의 명령을 따를 뿐이며, 성도가 지체인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