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양반…?

목사는 양반인가, 종인가…?

에베소서에서 목사는 분명히 교회의 ‘5중직’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따라서 성경을 ‘한 점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경전’으로 읽는 교인들로서는 마치 목사가 성경에 명시된 원형적인 직분으로, 처음부터 주께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존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1)

목사와 교사를 구별해서 서로 다른 두 직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고, 두 단어를 잇는 접속사가 ‘or’가 아니라 ‘and’라는 점에 주목해서 동일한 직분의 두 기능으로 보고 4중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경우이든 목사는 ‘기록’을 통해서 엄연히 교회의 ‘중요한 직분’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러나 ‘목사’는 본래 성경에 기록된 직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버젓이 기록됐다는 것은 성경의 의도적 변개나 종교적 조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컨대 목사는 교인들이 세운 종교인, 또는 종교지도자일 뿐 본래 ‘성직자’가 아니며,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예정된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종’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목사라는 직분은 가톨릭의 사제와 견주는 개신교의 강력한 영적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 ‘종교개혁운동가들’이 설정한 지위일뿐 처음부터 성경에 이름을 올린 성경적 직분이 아니다. 예컨대 성경의 모든 역본마다 ‘목자’로 번역했던 헬라어 ‘포이맨’을 종교혁명 이후에 개신교에서 ‘목사’로 변개해서 새로 ‘만들어진’ 종교적 직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목자이든 목동이든 상관없이 주께서 양을 치고 먹이라고 말씀하신 지위라면, 목사는 결국 목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셨던 목자의 의미를 깊이 따져보면, 원래 성경의 목자(목동)는 지금의 ‘권위적인 목사’와는 전혀 다른 지위이며 신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자 또는 목동은 이른바 ‘종교귀족’의 호화스러운 자리가 아니며, 결코 교회의 ‘권력자’로 둔갑할 수 없는 특별한 신분이 아니다. 형제들 가운데 천대받던 다윗이 형들과 달리 전쟁터에 ‘전사’로 나가지 못하고 집에 남아서 양을 쳤던 목자였던 것처럼, 목자는 이스라엘에서도 가장 비천한 직업들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이 스스로 ‘목자’라고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겸손해서가 아니라, 겸손을 가장한 채 속내는 양을 소유한 주인으로서, 양을 다스리는 지배자의 특별한 지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착각 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네(베드로의) 양을 치고 먹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와 분명히 구별해서 “내(그리스도의) 양을 치고 먹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 ‘내 양을 먹이라’ […]” (요21:15-17)

목자는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양을 보살피는 비천한 종이다. 다치지 않게, 굶지 않게, 병들지 않게 주인의 소유를 돌보는 종일 뿐 결코 주인이 아니다. 요컨대, 양으로 상징되는 신자는 목자의 소유가 아니라 주인의 소중한 소유로서, 종으로부터 마땅히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면 그저 쓴웃음이 터져 나온다. 목사가 비천한 종은커녕 마치 양의 생사여탈을 결정짓는 주인처럼 당당히(?) 행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인 몰래 양의 털을 벗기고 고기를 팔아 자기 뱃속을 채우는 악한 목동이나 삯꾼 목자처럼, 자신의 사사로운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주인의 양들을 죽이고 짓밟고 욕보이는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

주께서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바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과연 한국교회 목사들 가운데 몇 명이나 교인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기꺼이 희생하고 헌신하는가? 목사가 주의 종이며 교회의 사역자라면 처음부터 그 자리는 세상의 허튼 영광을 누리려는 자가 탐하는 욕망의 자리가 아니다. 주께서 세우신 최초의 ‘목자’ 베드로의 고난을 기억하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21:18)

목사들이 최초의 목자인 동시에 교권의 수임자라고 내세우는 베드로는 세상에서 부귀와 영광을 누리기는커녕,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처참하게 죽으면서 끝내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목사가 본디 목자라면 응당 목사는 목자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게 목양권을 위임받은 제자 베드로의 삶과 신앙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현실은 어떤가? 중대형교회의 목사가 되면 응당 수억의 연봉에 덧붙여 별도의 활동비를 받고, 최고급 승용차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자식들은 해외에 유학 보내야 격에 맞는 처우로 생각하는가 하면, 한참 후의 은퇴에 대비해서 노후자금으로 수 억, 수십억을 일찌감치 챙기며 이른바 ‘폼 나는 인생’을 향유하고 있다. 이는 반성경적인 삯꾼의 더러운 삶이 아닌가.

성경에 ‘목사’는 없다. 목자, 목동이 있을 뿐이며, 그 자리는 지극히 비천한 신분으로 주인의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종일뿐이다. 이 글은 내가 목사안수를 받기 전에 썼던 글이다. 우연찮게 이 글을 다시 읽는 동안, 그때나 지금이나 한 치도 차이가 있을 수 없는 ‘원칙’이 떠올랐다.

즉, 내가 목사이든 목사가 아니든지 처한 입장과 상관없이 목사가 반드시 지켜야 되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목사를 교회의 권력자로 부추기고 지배자로 변질, 타락시키는 담임목사제도, 당회장제도의 완전한 철폐라는 것이다.

이유는, 타락한 목사권력을 타파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절대로 개혁될 수 없고, 개혁되지 못하는 한국교회는 사이비 목사교회로서 이른바 ‘반성경적인 이단교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역자로서 목사는 비록 ‘낮은 자’에 ‘비천한 종’이지만…, 주께서 부여하신 사명을 오롯이 감당할 때, 다시 말해 ‘섬기는 종의 자리’를 기꺼이 감당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사역자일 수 있다. 사역자의 행복은 돈과 권력, 명예에서 비롯되는 ‘거짓과 교만, 탐심과 정욕’이 아니라, 겸손한 사역자를 사랑하는 성도의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돈과 지위, 명예에 눈먼 자들은 목사를 그만 두라. 그것이 한국교회를 살리고, 교인을 살리고, 목사의 영혼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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