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무용지물인가?

종교는 무용지물인가?

사역을 시작하면서 처음에 썼던 글들을  되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나의 주제, 이를테면 ‘목사권력 타파’는 일관된 주제인 반면에, 기독교의 종교행위에 관한 비판은 그 정도나 내용에 있어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예컨대, 사역 초기에 썼던 글이 이른바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신앙 범주들, 이를테면 ‘주일성수’, ‘십일조’  등을 다루면서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  유대인들에게 절대계명이었던 안식일이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으며, 십일조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늘날 종교의식에 연연하는 대다수 교인들의 타성적인 신앙생활 역시 비판적인 관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주일성수와 십일조가 목적일 수 없었던 그 만큼, 그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 역시 결코 그리스도 신앙의 목적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교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보게되는 ‘일관성’이 다름 아닌 주일성수의 타파와 십일조 폐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영적 신념’처럼 확신하는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다. 구약시대의 예배와 달리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신약시대에는 예배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의 본질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혁교인들 가운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사도들의 초대교회에서 교인들이 모이기에 힘썼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유대교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며 모이기에 힘썼던 것인가? 아니면, 로마제국의 폭정에 맞서기 위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모이기에 힘썼던 것일까?

이는 신념이나 신앙 이전에 기독교의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굳이 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구약시대의 제사가 없어졌다는 이유가 결코 신약시대에 예배를 소홀히 대하는 이유일 수도, 명분일 수도 없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에게 분명히 종교적, 형식적, 의식적인 예배가 있었다.

그들은 1부와 2부로 나눠 예배를 드렸다.  1부에서는 말씀을 강론, 또는 학습하였으며, 2부에서는 성찬식을 통해 성도의 친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종교의식을 수행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말씀과 성찬은 초대교회부터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종교의식으로 지켜졌던, 이른바 기독교의 기본이다.

마치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은 사랑이기 때문에 삶의 현장에서 모름지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의 본질이며,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지엽적인 일들, 나아가 본질을 훼손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겉이 없는 속이 없으며 형식이 없는 내용은 없다.

마찬가지로, 신앙을 말하면서 종교를 부정하는 오류, 다시 말해 ‘종교 없는 신앙’은 마치 정부 없는 국가처럼 종교적인 무정부주의, 무위론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 신앙을 가장한 자기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종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신앙의 우위에 두며 인위적인 종교제도로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종교주의’이다. 에컨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타락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이념인 율법주의가 율법을 훼손했기 때문에 유대 신앙이 타락한 것이다. 반면에 율법이 없는 유대인, 이를테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이 진정 ‘개혁적인 신앙’이며 ‘가치 있는 신앙’이었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역하는 ‘죄인’일 뿐이며, 입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외식하는 자’일 뿐이다. 물론 형식은 형식이며 형식이 본질일 수 없으며, 종교는 종교일 뿐 종교가 신앙의 본질일 수 없다.

그러나 겉이 없는 속이 없듯이 형식이 없는 본질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 없는 신앙은 사실인즉 신앙이라는 이름의 종교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에 미치지 못한다. 기독교의 제반 종교행위를 비판, 부정하면서 신앙의 본질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종교이념에 지나지 않는 전형적인 과유불급이다. 요컨대, 종교와 신앙은 모순이 아니라 보완이며, 종교는 신앙을 성장, 성숙, 발전시키는 도구로서 자체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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