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없이 용서 없다…

회개 없이 용서 없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부한 일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15:17-20)

성경은 탕자의 비유를 기록하면서 결코 아버지의 ‘일방적인 은혜’를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처절한 고난을 겪으면서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했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마침내 죄에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탕자를 용서했다고 기록했다. 탕자의 비유에서 제시된 회개의 과정을 정리하면,

1)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재산이 있는 잠깐 동안 자유를 만끽하며 창녀와 함께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2)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탕진한 탕자는 처절한 궁핍을 겪었으며

3) 고난의 정점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4)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서 ‘종의 신분’으로 돌아가겠다고 결단했으며

5) 마침내 행동으로 옮겨,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이처럼, 아버지의 용서를 받기 전에 온전한 회개가 선행되었으며 성경이 제시하는 회개의 전 과정이 고스란히 실현됐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무조건 용서하신 것이라는 해석은 ‘내가복음’에나 있을 뿐 정경의 사복음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해석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중대한 요인은 성경을 문맥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부를 발췌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분명히 성경에는 ‘용서하라’ 이전에 ‘회개하라’가 있었지만, 자기만족과 위로를 위해서 독자는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은연중에 ‘용서하라’는 구절만 발췌하는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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