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救贖)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끝없는 논쟁… 십자가 구속(救贖)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이른바 ‘부활구원론’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고 나 역시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당사자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쨌든 원치 않는 오해가 있을 것 같아 다시 글을 올린다.

그들의 주장이 결국 “십자가 죽음은 완전하지 않으며 부활이 구원의 완성이다”라는 주장이라면, 그리고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미완의 죽음이다”라는 주장이라면 나는 여전히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십자가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전적인 구속을 전제하는 ‘대속제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활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다. 성경은 분명히 부활을 역사적인 사실인 동시에 영적인 능력(권능)으로 증거하며, 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 신앙도 헛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4)

그리스도 신앙은 ‘구원 신앙’인 동시에 ‘부활 신앙’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앙에서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구원 신앙의 믿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소중한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를 ‘불완전한 복음’으로 치부하는 치명적인 오류가 돼서는 안 된다. 성경은 부활을 강조하는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십자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

도대체 구원 신앙을 말하면서 우선순위를 제멋대로 정하며, 기독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 십자가와 부활을 대립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십자가와 부활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는 오류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자신의 주관적인 신앙관을 비롯해서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용어에 대한 부정확한 정의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구속’과 ‘구원’을 구별하지 못한 무지와 속단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친 십자가는 ‘완전한 제사’로서 그것은 ‘지금 여기서’, 그리고 예수의 재림 때 일어나는 구원이 아니라 ‘구속 사역’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고’, 속죄제물로 ‘내어주신’ 구속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오롯이 완성되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은 그 순간에 모든 인류가 (종말론적) 구원을 얻는, 이를테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완성했다는 말이 아니라, 인류가 구원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구속 사역을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멀리하며 하나님을 배역했던 인류의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하나님과 단절됐던 관계를 회복하는 예수의 대속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과 여전히 단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에게 구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2000년 전의 십자가 대속,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십자가의 구속사역이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 나와 1:1의 직접 연관이 없는, 다시 말해 인류를 위한 객관적인 구속은 역사적이며 보편적인 사건으로 구원에 이르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로되, 그 자체가 지금의 우리를 위한 주관적(개인적)이며 구체적인 구원이 아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믿음이 뒤따르지 않는 상태에서 다만 십자가 대속만으로 우리의 종말론적 구원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십자가 대속을 통한 구속사역이 오늘날 우리의 구원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장차 예수의 재림 때에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원이 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예수를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서 구속을 ‘지금 여기에서’, ‘현재화, 개인화’ 하는 실천적인 신앙과 순종이 요구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받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 대속을 통한 구속과, 종말의 완전한 구원을 구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번에 끝난 ‘완전한 제사’이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속사역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의 시점, 다시 말해 ‘지금, 여기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무의미한 우선순위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믿음’의 정의에 대해서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믿음이란 예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신앙이라는 주장에 어떤 사람도 반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즉, 복음(Good News)이라는 말 자체가 구원의 복음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탄생’에 초점을 맞추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공생애의 삶과 사역을 통해 ‘본’을 보이시며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는 주장, 그리고 십자가 대속과 복음을 일치시키는 주장과 더불어 부활을 통해서 복음이 완성되었다는 이론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모두가 복음이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어떤 주장도 거짓이 아니다. 문제는 특정한 하나의 이론에 앵글을 맞추면서 다른 주장을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이론’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의 온전한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총체적인 관점에서 ‘예수 자체’이다. 탄생부터 시작해서 공생애의 삶과 사역, 그리고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합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이루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복음을 듣는 것은(믿는 것은) 십자가 대속에 치우치거나 부활의 능력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대속은 예수의 생명을 바치면서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계시하신 ‘구속사역’의 완성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가능성’을 제시한 ‘복음’이다.

그리고 부활은 언약에 의한 역사적인 ‘구속 사역’이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복음을 우리에게 확증하는 사건으로서 예수께서 친히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를 보여주신 영적이며 육신적인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며 바울이 특히 강조했던 다음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 주목하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롬15:17-20)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 예수의 부활을 말하면서 바울은 동시에 ‘우리’, 즉 믿는 자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바울은 부활을 통한 ‘구속사역’의 완성을 말한 것이 아니며, 예수의 부활을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예수처럼 부활이 있다’는 구원의 진리를 증언한 것이다.

요컨대 ‘구속’과 ‘구원’을 혼동하지 않고, 부활의 신비를 넘어서 계시적 메시지를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 구원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을 마무리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십자가 없이, 또는 부활 없이 구원이 없다는 주장은 엄밀히 말해서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에게 구원이 없다”는 말이며,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에게 구원이 없는 것처럼, 십자가의 대속을 믿지 않는 자에게도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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