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를 섬기는 ‘우리 교회’,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목사를 섬기는 ‘우리 교회’,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아마 한국교회의 교인들만큼 종교심에 뜨겁게 불타는 경우는 온 세상을 뒤져본들 극히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새벽 예배’가 한국교회에는 매일 열리는가 하면, 공(적)예배라는 이름으로 주일은 물론이고 매주 수요일, 금요일마다 끊임없이 반복된다. 뿐만 아니다. 수시로 부흥회가 열리고, 때만 되면 ‘특새’를 비롯한 특별집회를 개최하면서 쉴 새 없이 교인들의 발길을 교회로 유도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미국의 오순절교단을 비롯한 일부 교단에만 남아있다는 십일조가 한국교회에서는 자발적인 헌금을 넘어 ‘참된 교인의 자격’으로 거론되는 실정이다. 애써 신약시대 십일조의 비성서적 근거를 제시해도 독실한(?) 교인들에게 그런 반론은 차라리 ‘교회를 뒤흔드는’ 사탄의 유혹일 뿐이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 이른바 ‘우리 교회’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활이 빈곤한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록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이 비좁은 셋집에 누추할망정, ‘우리 교회’만큼은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넓고 화려하며 최고의 음향시설에 뛰어난 영상 시스템까지 갖추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물론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비록 가난한 살림일망정 온갖 명목의 헌금도 마다하지 않는다.

빚을 내서라도 ‘분에 넘치게’ 헌금하면 머잖아 하나님이 차고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순간적인 고생쯤은 대수롭지 않다. 단지 시간이 문제일 뿐, 마침내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실 테니까 그때까지 다소곳이 기다리기만 하면 결국 ‘만사형통’을 누린다는, 실로 가상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이런 열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다른 교회들보다 영적인 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물질적인 면에서도 마땅히 우월해야 한다는 허튼 맹신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자기가 섬기는 교회, 이른바 ‘우리 교회’의 가시적인 성장과 부흥을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은혜의 증거이자 척도로 생각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별교회마다 주장하는 ‘우리 교회’라는 낱말은 성서적인 근거가 없는 허사虛辭에 지나지 않으며 예수교회, 이른바 ‘내 교회로서’ 하나의 유일한 교회를 세우신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전적인 무지이며 가증한 도발이다. 나아가, ‘우리 교회’를 유난히 강조하며 나름 충성스러운 교인들의 속내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탐욕의 복음’에 찌든 이기적인 욕망이 번뜩인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돌연변이이다. 한국교회를 타락의 수렁에 깊숙이 빠뜨린 ‘개교회주의’의 이단적인 발현인 동시에, 목사가 중심인 한국교회에서 사실상 목사교회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교회는 오직 하나, 예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던 ‘그 교회’로서,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뿐이다.

가장 성경적인 교회의 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초대교회에 과연 지금처럼 ‘우리 교회’라고 부르는 개교회가 있었던가? 예를 들면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고린도 교회’, ‘에베소 교회’처럼 특정한 이름을 지닌 다양한 개별교회들이 있었는가? 아니다! 예컨대,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라는 간판을 내건 개별 교회의 독자적인 이름이 아니라, 교회가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 교회는 고유명사로서 특정한 교회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일컫는 보통명사다. 성서를 보면 단수의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복수로  ‘예루살렘 교회들’로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결국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그곳의 지명을 따서 편의상 예루살렘 교회라고 불렀을 뿐,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사나 교인들이 개별교회를 개척하면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정한 명칭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들’의 초대 주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어림잡아 20여개의 교회들이 존재했으며, 어떤 교회도 독자적인 이름을 갖지 않았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 존재하는 여러 교회들의 총칭일 뿐, 별도의 ‘정관’과 ‘목사’가 있는 개별적인 조직 교회가 아니다.

굳이 교회에 이름을 붙인다면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을 뿐이며, 교회에 지명을 덧붙여 각 교회들을 구별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안디옥 교회는 안디옥에 있는 교회, 고린도 교회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로서 모두 ‘예수교회’일 뿐이다. 오늘날 개별교회의 교인들이 다른 교회와 구별 짓는 ‘우리 교회’라는 호칭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라 제도적인 교회이며, 예수가 주인인 원형교회가 아니라 ‘목사’가 주가 되는 변형교회에 해당된다.

오래 전에 사랑의교회 갱신위원회 성도들이 모이는 금요마당기도회에 갔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오정현 목사의 시종을 자처하는 주 아무개 목사를 위시해서 여러 (부)목사들과 중직들이 나서서 “당신은 우리 교회의 교인도 아니면서 여기에 왜 왔소?”라고 따져 묻는데, 순간적으로 “목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이건 정말이지 너무 무지하고 무식하다”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목사와 중직이라는 자들의 입에서 ‘우리 교회’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닌 당신이 여기에 왜 왔소?”라는 경망스러운 말이 서슴지 않고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교회지도자라는 자들의 이토록 황당한 무지와 저급한 영성에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인들마다 ‘우리 교회’가 있고, 따라서 개별교회들이 각각 ‘다른 교회’라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교회가 섬기는 자신들만의 예수, 이른바 ‘다른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교회는 오직 하나로서 예수가 주되시는 ‘교회’가 있을 뿐이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우리 교회들’은 목사가 교주이며, 성경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명백한 이단이다.

내가 ‘아르케 처치’(원형교회)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주의 교회로 돌아가자며 ‘교회회복’을 외치는 뚜렷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예수를 ‘주이시며 그리스도’로 온전히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며,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진정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교회는 마땅히 ‘하나’의 우리교회가 돼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인들의 입에 붙은 ‘우리 교회’는 예수교회가 아닌 목사교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우리 교회는 예수가 아니라 담임목사가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요컨대, 개별교회는 반성경적인 ‘목사 성직주의’의 아성이며, 목사 성직주의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있을 수 없다.

예수를 믿고 예수를 ‘유일하신 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우리 교회’나 ‘다른 교회’라는 차별적인 낱말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영적 무지의 증거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우리 교회’를 들먹이며 정작 예수의 거룩한 교회를 왜곡하는 세상의 모든 이단 교회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영적 전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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