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평신도 사역을 위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가 되지 않으려면…

아르케처치 동지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곳 피닉스에 와서 몇 달째 ‘교회사역’에 열중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경을 가르치고 강연하며 책을 쓰는 등 나름대로 사역에 열심이었지만,

목사라는 이름으로 매주 설교하며 교인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사역하는 것은 처음이며, 그런 만큼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쌓게 되었다.

나 역시 목사의 설교독점을 왜곡된 목사주의에 견주며 심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임에도, 막상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낀 바들 가운데 하나는…

설교라는 것이 – 물론 한국교회에 흔해 빠진 표절이나 인용, 예화나 사담 등의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사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주일 내내 준비에 매달려도 막상 주일설교를 마치고 나면 스스로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을 만큼 허술하고 불충한 형식과 내용에 마음이 불편하다…

아직 몇 달 되지 않은 ‘신병’이라고 변명하며 자위할 수 있겠지만, 설령 충분한 경험이 쌓인 사역자라고 해도 성경의 문자들을 녹여 말씀으로 주조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명히 깨달았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평신도 사역을 주장했던 사람이며, 지금도 교회의 진정한 개혁과 회복을 위해서 평신도라는 이름의 성도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신념에 전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비난을 감수하며 딱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평신도 사역이라는 말이 만약에 ‘풀타임 직업을 가진 사람이 가끔 짬을 내서 사역하는 것,

그런 맥락에서 평신도들이 전문성을 뒤로 한 채 단지 ‘서로 돌아가며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그런 의도의 순수성은 인정하되 그런 사역의 결실은 척박할 수밖에 없다는 고언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히 알아야 된다. 평신도 사역은 기성교회의 참담한 불의를 비판하며 그곳에서 뛰쳐나온, 이른바 ‘개혁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

타락하고 부패한 목사성직주의에 단호히 맞서되 기성교회를 영적·종교적·성경적, 나아가 신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다. 기존 목사교회에 실망해서 한국교회를 떠난 개혁교인들이 평신도가 만든 새로운 교회에 한동안 열정을 갖고 동역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의 열정은 시들고,

‘이게 뭐지?’ 자문하며 신앙의 회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그곳마저 떠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차라리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개혁의 열정은 분명 소중하지만, 개혁의 열정 그 자체가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은 아니다.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은 나름의 가치가 있되,

“묵은 포도주를 맛본 자들은 새 포도주를 마시려 하지 않는다.”는 말씀처럼, 전문성이 결여된 평신도의 순수한 사역, 그것만으로는 결코 기성교회의 타성과 유혹, 그리고 교인들의 영혼에 깊이 심어진 맹신을 이기지 못한다.

내가 목사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밝힌다. 내가 생각하는 목사, 그리고 아르케처치 목사는 분명 ‘성도’이며 평신도가 성도와 동의어라면 아르케처치 목사 역시 평신도이다.

그리고 아직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때가 무르익어 아르케처치에 목사라는 이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오면 아르케처치는 기성교회와 구별되지 않는, 목사라는 이름을 가차 없이 버릴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평신도 사역이 나름의 결실을 맺으려면 의욕이나 열정을 뛰어넘어 치열한 ‘프로근성’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채 ‘끼리끼리’ 모이는 평신도 사역은 타락한 한국교회에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이른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아마추어리즘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마침내 평신도 사역 자체가 위기에 처하고 교회개혁운동이 총체적으로 외면당하는 비상한 상황이 올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개혁’을 말하는 교인’이라면 너나없이 평신도 사역을 외치는 세대인 지금, 이 글은 열매 맺는 사역을 위한 고언이며 결코 특정한 개인들, 또는 단체들을 겨냥한 글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 “내 교회를 세우리라!” 에클레시아 후원계좌 : 하나은행 : 216-910086-92207 : 예금주 : 디유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