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헐고 교회를 세워라…!(2)

성전을 헐고 교회를 세워라 (2)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선민選民으로서 자신들이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영적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상징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을 대신하며 점점 세속의 우상으로 변질됐고, 그들의 신앙은 마침내 본질을 잃은 채 속된 외형주의로 치달았다.

“너희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여!”라는 주님의 외침은 율법의 형식주의에 빠져 진정한 신앙을 잃은 유대인의 허튼 종교성에 대한 무서운 질책이다. 일단 형식주의에 빠지면 형식, 곧 ‘겉’을 중시하되 진리, 곧 ‘속’을 무시하며 마침내 외식에 빠져 마음에 죄악을 가득 품고도 깨닫지 못한다.

마음속의 죄는 외형이 없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율법의 종교의식을 애써 지키면서 연중에 자기 의에 빠져 마침내 구원을 잃는 자, 이를테면 ‘성전에서 소리 높여 기도하는 바리새인’이 좋은 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누가복음11:39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돌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무너지리라”라는 말씀은 ‘사실로서’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것이 아니라 ‘비유로서’ 유대 민족종교의 근간인 성전신앙, 곧 율법주의에 빠진 유대교의 파멸을 선언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건물을 마치 영원하신 하나님인양 우상시하며 맹목적으로 숭배하던 유대인들의 그릇된 신앙을 거세게 질타하셨다. 본문의 제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멋진 ‘장관’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자긍심을 과시하려던 것이다. 본문에 대한 ‘메시지 성경’의 번역을 주의 깊게 읽어보기 바란다.

예수께서 가시는데,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얼마나 장관인지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고작 이 모든 규모에 감동하느냐? 사실을 말하면 저 성전의 돌 하나하나가 결국 잔해더미가 되고 말 것이다”

성경을 보면 제자는 성전의 상태를 묻지도 않았으며, 성전의 앞날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어떠하니이까’라는 단어는 형태상 의문형 종결어미로 의문문의 형식으로 보이지만 내용은 평서문이며 의미를 따져보면 명백한 감탄문이다. ‘얼마나 장관인지’에서 ‘얼마나’(how)가 바로 감탄문의 지표가 된다.

즉, 제자는 성전의 멋진 경관에 감탄하며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자화자찬한 것이다. 반면에 예수의 답변이 오히려 의문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대의 생각을 뒤집는 반문법이라는 말이다. 성전을 자랑하는 제자의 감탄에 예수는 성전 건물은 단지 ‘돌더미’에 지나지 않는다고 에둘러 대답하신 것이다.

사람의 눈과 주님의 눈은 이처럼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성전이 예수님의 눈에는, 다시 말해 하나님 보시기에는 보잘것없는 ‘돌들에 지나지 않았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닌가. 인간의 말로 가히 설명조차 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들, 즉 예루살렘 성전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예수께서 “성전의 돌 하나하나가 결국 잔해더미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흔히 생각하듯이 머잖아 이방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붕괴되리라고 ‘예언’하신 것이 아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자랑하고 과시하는 성전신앙, 곧 유대 율법주의의 외형이 헛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상징하는 성전신앙을 빗대면서 율법주의에 빠진 유대교가 붕괴되리라고 예언하셨다. “율법은 요한의 때까지니라”는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라. 율법이, 다시 말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이념인 율법주의에 시로잡힌 유대교가 예수의 때에 이르러 마침내 파멸하리라고 선언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께서 성전신앙을 거세게 비난하셨지만, 유대인의 성전신앙이 처음부터 명분이 없는 거짓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고, 성막은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 뜻에 따라 성전으로 크게 발전한 것이다.

성막이나 성전은 특별히 선택하신 백성인 유대인들과 하나님이 (제사장을 통해) 만나는 거룩한 장소였고,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지존의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또는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장소였다. 그렇다면 성전을 사랑하는 열정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유대인들은 보이는 성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섬기면서 마침내 성전을 우상으로 숭배한 것이다. 그리고 성전을 숭배하는 종교적인 열정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진정한 신앙인양 착각한 것이다.

성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셨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성전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면 성전 신앙은 절대로 잘못된 믿음이 아니다. 성전의 ’돌들‘ 자체가 이미 거룩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선민인 그들로부터 경건한 종교의식을 통해 믿음을 보다 굳건히 지키게 하시려는 뜻일 뿐, 하나님이 오직 성전에 머무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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