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헐고 교회를 세워라…!(3)

‘맘몬의 사원’, 성전을 허물고 교회를 세워라!(3)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유대인의 사랑과 자랑은 말 그대로 지극해서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성전을 신성시 했다. 예수께서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삼 일만에 다시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예수의 실제 행동이 아니라 다만 말만으로도 이미 신성모독이라며 죽일 궁리를 찾았다.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물리적 건물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상징으로 엄연한 영적 우상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전을 그토록 신성시하며 ‘거룩’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에게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이 거룩한 성소였을까?

물론 ‘그렇다’가 당연한 대답이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전을 애지중지하는 그들의 종교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신앙심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성전을 진정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성소라고 여겼다면 그들은 감히 성전을 돈 냄새 물씬 풍기는 속된 장터로 만들 수 없다.

어떤 프랑스 종교학자가 ‘폭력적인 예수’라고 거침없이 불렀던 성경적 배경을 살펴보면,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를 쫓아내는 예수의 거친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예수의 거룩한 분노’라고 해석하는 구절로, 성경에서 보는 예수의 유일한 ‘폭력’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막 11:15-17

사람들이 몰려드는 성전의 안뜰, 즉 목 좋은 자리에서 ‘매매’하기 위해서 장사꾼들은 제사장을 비롯한 성전 관리들과 은밀한 뒷거래가 있어야 가능하다. 입으로는 거룩한 성전을 말하면서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탐욕스런 속내는 전혀 달랐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되 마음은 멀리 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들은 진정한 마음으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서 성전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다만 종교적 상징물로서 성전의 ‘장관’을 보란 듯이 자랑할 뿐이다.

왜 그럴까? 그토록 성전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면서 정작 마음과 행동이 같아야 되지 않을까? 어쩌다 벌어진 우발적 사건일까? 아니다. 지나치게 종교성에 갇힌 교인들이 자신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며 은연중에 저지르게 되는 필연적 오류이다. 역설적이지만, 지나치게 종교성에 빠져들면 지나치게 신앙을 잃는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종교와 신앙 가운데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다른 하나는 서서히 뒤처지다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슬그머니 대체시키기 때문이다.

율법의 조문들을 빠짐없이 지키며 종교행위에 열심인 바리새인이 바른 신앙인이기는커녕, 주님은 그에게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눈에 보이는 종교행위는 있으나 마음에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믿음이 없는 종교는 자기 의를 드러내는 외식(外飾)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며, 외식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배역하는 죄악으로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심이 신앙심이 아니며 종교성이 영성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섬기는 것인데 반해 종교주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인위적 제도’에 따르고 종교제도에 복종하는 것을 마치 온전한 순종인양 착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행위에 열심인 사람이 언제나 바른 신앙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종교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마음의 신앙’을 잃고 외형적인 종교행위를 바른 믿음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헌금 잘 하고, 예배 잘 드리고, 기도 열심히 하고… 종교행위에 깊이 빠지면서 교인들은 영적 교만에 빠지면서 은연중 자기 의를 드러낸다. 이만하면 나는 좋은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마음의 의식意識이 아니라 겉치레의 의식儀式을 따르는 자, 이른바 외식하는 종교인으로 변질되면서 하나님과 내면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바른 신앙인이 되지 못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영적 교만에 깊숙이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글의 제목을 ‘성전을 허물고 교회를 세우라’로 정하면서 엄연히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는 유대 성전과 현대 교회를 동시에 다룬 이유가 있다. 이 글을 쓴 의도는 유대교 성전을 허물고 기독교 교회를 세우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른 종교와 배타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의도도 아니다. 사실은, “(성전이라는 미명의) 호화 예배당을 허물고 교회를 세우라”가 본뜻을 살리는 제목이 될 수 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시점과 지점이 지금의 한국과 분명히 다르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실상을 바라보면 주님이 유대인, 특히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거짓과 탐욕을 향해 ‘화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여!’를 외치셨던 당시 유대교의 모습과 오늘날 상황과 너무 똑같다.

다시 말해, 주님이 지금 세상에 오신다면 한국의 종교권력자들을 향해 토씨 하나 다름없이 “화있을진저, 너희 교회 지도자들이여!”를 외치실 수밖에 없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상이 교회의 비리와 타락을 엄히 꾸짖고 엄히 질책하는 실정이며, 교회는 세상의 죄와 허물에 대해 꾸짖거나 책임을 물을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야말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조롱을 당하기 십상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은 재물과 종교적 권위에 치우친 반면 오늘날 한국 (중대형) 교회 권력자들의 타락은 한마디로 말해 ‘전 방위 부패’이다. 돈, 성(sex), 지위, 위선, 외식, 교만과 탐욕… 일일이 죄목을 나열할 수 없을 지경이며, 일일이 나열할 필요도 없다.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보기 때문에 애써 하나하나 지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부패한 현상들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 다시 말해 뿌리부터 솎아내는 진정한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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