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헐고 교회를 세워라…!(4)

성전을 헐고 교회를 세워라 (4)

율법주의에 갇힌 유대교는 하나님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종교적 도구로 내세워 종교 권력자들의 ‘배’를 채우는 탐욕의 종교, 종교인을 위한 종교로 변질되고 말았다.

모세의 율법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모세의 자리’, 이를테면 ‘상석’에 앉아 모세의 권위를 누리며 거들먹거리는 유대 종교권력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 정작 예수는 없고, 다만 ‘예수의 자리’에 앉아 지위와 권력을 주무르고 예수의 이름을 헛되이 외치는 교회권력자들로 예배당이 차고 넘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성전은 교회당으로, 율법은 성경으로, 안식일은 주일로, 제사는 예배로, 제물은 헌금으로, 제사장은 목회자로 이름이 변했지만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주님은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너희들 소유의 양이나 염소가 구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이라고 구하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셨다. 이는,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가 모든 일을 마다하고 종교의식을 치르는 날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나아가, “오히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래의 의미를 가르치셨음에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주일성수는 유대교의 안식일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주일 성수’는 ‘십일조’와 더불어 한국 교회의 교인들을 진짜 신앙인과 가짜 신앙인으로 가름하는 배타적 평가기준이 되었다. 신정국가인 고대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을 어기는 유대인은 사회에서 배척되고 심지어 신성모독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한국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지 않는 교인들은 ‘내 논 자식’ 취급을 받는다.

교회 직분에서 배제 당하고, 교회에서는 거침없이 초짜 또는 무늬만 교인으로 낙인찍힌다. 결코 주일의 의미와 가치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주일이 성경적 근거가 없고 종교적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정해졌다 해도 그런 사실을 빌미로 주일의 소중한 의미를 부정할 수 없다.

주님은 “너희들 가운데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두 세 사람’으로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흔히들 교회 모임에 사람들이 적게 모여도 실망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런 ‘자의적인’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두 세 사람’의 바른 의미를 ‘한 명’의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화자의 의도에 부합하다. 다시 말해 수의 다소에 상관없이 ‘성도가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이며, 성도로서 교회가 있는 곳에 주님도 함께 계신다는 의미가 문맥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성도가 모이는 종교이다. “모이기에 힘쓰라”는 바울 사도의 말처럼, 교인들은 모여야 하고,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해야 하며, 서로 어울러져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거룩한 무리’로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상의 삶으로 인해 매일 모이기 힘든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번,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며 일요일에 맞춰 교인들이 모이는 날로 정한 신약의 주일은 정당한 가치를 지닌다.

지나친 종교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종교적 필요에 따른다고 모두 악은 아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명시된 근거가 없을지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기 위해 주일이 제정됐다면 이미 주일의 의미와 가치는 성경적 근거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는 종교적 요구가 성경적 요구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다만, 안식일이 주인이 되고 사람이 종이 되는 것이 율법주의의 잘못인 것처럼, 주일 역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날이며 주일 자체가 거룩한 날은 아니다. 다시 말해, 주일은 처음부터 ‘거룩한 절기’가 아니라 교인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날로 종교적 판단에 따라 사람들이 정한 날이다.

함께 성경을 공부했던 어떤 자매가 주일을 지키지 못해 마음이 불편하다며 사정을 털어 놓았던 적이 있다.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가 토요일 저녁에 사고로 크게 다치셨는데 남편이 함께 내려가자고 했다면서 아무래도 주일에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며 말하는 내내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성경을 잘못 배웠다”고 크게 야단쳤다. 늙으신 시어머니를 시골에 홀로 사시게 내버려둔 것도 적잖은 불효인데, 주일을 핑계로 마음에 갈등을 느낀다는 게 나로서는 전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마음가짐이라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으면 주님의 무서운 벌을 받지나 않을까 못내 두려워한다. 매우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의 미신이다. 만약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의 무서운 벌을 받는다면, 안식일의 규례를 어긴 예수께서 먼저 하나님의 무서운 벌을 받았어야 했다.

주일에 교회 가는 것 자체로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주일성수하겠다며 기껏 교회에 가서 설교 들으며 졸고, 교인들끼리 상처를 주고받고,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주일성수’ 했다고 과연 주께서 기뻐하실까?

일주일에 하루라도 일상과 뚜렷이 구별된 날을 보내는 것은 개인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주일을 부정하기는커녕 도리어 나는 주일을 잘 지키고, 가능하면 주일에는 다른 일 하지 말고 예배, 기도, 찬양, 봉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바는, 형식적인 주일성수가 결코 신앙의 증거이며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일이라도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중요한 일, 즉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로서 이른바 ‘선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옳다.

이는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자비가 제사보다 나으니라.”, “긍휼이 번제로 드리는 제물보다 나으니라.”, “순종이 제사보다 나으니라.”,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와 다툰 일이 기억나거든 가서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병행문의 앞 단어들, 자비·긍휼·화해는 모두 ‘사랑’을 가리키는 의미소들이며, 뒤 단어 ‘제사’는 종교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순종’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계명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약시대에도 사랑의 실천이 제사, 이를테면 신약시대의 종교의식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성전을 허물고 교회를 세우라”는 말은 결국,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택하라는 말인 동시에 가라지를 치우고 알곡을 거두라는 말로서, 외식하는 종교주의에서 벗어나 신앙의 결실을 맺는 진정한 신앙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내 교회를 세우리라…! ‘에클레시아’ 후원계좌 : 하나은행 216-910086-92207 예금주 : 디유♦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