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1)

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1)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인들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6-27

예수께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자는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셨다. 자기애와 가족애에 깊이 빠진 사람은 이기심과 자아의 틀에 갇혀 주님의 최고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이타적 사랑을 결코 실천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몸소 본을 보이셨던 것처럼, 진정한 사랑은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 즉 ‘너’와 ‘그’를 거짓없이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히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지니고있다는 말과 언제나 동의어는 아니다.  감정적 사랑은 상대에게 호감을 느낄 때, 다시말해 내가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느낄만한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서 마음이 따르는 이기적 사랑이다. 그런 사랑은 감정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바뀌며, 친소 관계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참된 사랑은 조건에 따라 늘상 변하는 종속변수가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는 영원한 상수이다. 사랑하되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사랑의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셨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친히 보여주셨던 것처럼, 누구든 차별없이 사랑하라는 명백한 잣대이다. 그 사랑은 나의 감정에 따라 수동적으로 선택되는 사랑이 아니라, ‘원수까지’ 가리지 않고 차별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 희생을 전제하는 온전한 사랑이다.

따라서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육신과 안목의 정욕에 따른 감정적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의무이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 계명이다. 그 사랑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먼저 자아와 정욕을 버려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결국 자신의 ‘육적 자아’를 죽이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정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라야 예수를 따를 수 있다면, 예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사랑하기는커녕 기꺼이 자기를 부인하는 자라야 온전히 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는 자, 다시말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과연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수 있을까?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저없이 따라야만 하는 엄연한 계명이지만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녹녹하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애써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그의 계명을 지키려는 이유도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기를 사랑하는 자라야 보다 나은 자기 모습을 바라며 기꺼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자이며, 사랑을 모르는 자는 결국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의 또다른 기준으로 자기 사랑을 강조하셨다. 주님이 율법을 가장 큰 두 계명으로 요약하신 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6-40

 

 

주님은 구약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해,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구절을 가장 큰 계명 가운데 하나로 요약하셨다. 두 계명으로 구별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이 서로 비중이 다르다기 보다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수직적 관계를 말하는 반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의 절대 계명을 의미한다. 언뜻 다른 듯 읽히지만 사실은 다를 수 없는 ’하나‘의 절대 계명이다.

성경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형제’ 즉 이웃을 사랑하며, 형제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하나의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사랑은 너나없이 모든 사람이 소유하는 일반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에게 주시는 특별한 성품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선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결코 폐쇄적 선택을 말하지 않는다. ‘열린 선택’이라고 할까, 어쨌든 종교성을 강조하는 ‘선택’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참된 사랑을 알 수 없으며,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을 아는 자이다. 사랑하는 자는 너와 그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동일하게 사랑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에게 존재하는 한, 자신 또한 어김없이 사랑받는 객체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주신 새 계명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국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율법의 큰 계명과 의미상 다르지 않다. 그렇다. ‘네 자신같이’라는 말씀은 결국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듯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도 못한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과,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인가. 그렇지 않다. 분명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며,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리이다.

다만, 각각의 단어가 문맥 안에서 뚜렷히 다른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즉, 제자의 조건으로 제시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문맥에서 ‘자기’는 자아에 갇히고 탐욕에 빠진 육적인 자기를 말한다. 그리고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의 문맥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기로서 달리 말하면 성령에 속한 자기를 말한다.

이처럼 같은 형태이지만 내용상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드시 부인해야 하는 자기는 다름아닌 탐심과 정욕에 빠진 ‘탐심과 정욕’의 자기를 의미한다. 이런 ‘자기’에 대한 사랑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랑을 뜻한다.

주님은 바로 그런 자신의 모습, 사랑하지 못하고 끝내 자랑하고 마는 거짓된 자신을 ‘자기 십자가’에 매달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반면,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에서 사랑은 순전한 의미에서 자기 사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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