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3)

‘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3)

세상에 속하며 육신의 정욕에 빠진 자신, 이른바 ‘옛 사람’인 자신을 허투루 사랑할 때 우리는 자기 자랑에 하릴없이 빠져들고 만다. 자기 자랑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신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탐심과 정욕에 사로잡혀 한껏 부풀어진 자신의 과장된 모습을 애써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육신에 속한 ‘자기’이며, 바울 사도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헛된 자아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자기 사랑은 자기 자랑과 근본이 다르다. 자기 자랑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좀 더 우월한 자신의 외형을 드러내려는 반면, 자기 사랑은 내면의 자기 모습, 초라하고비천한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 계명인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자기를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 초라하고 추한 모습까지 거짓 없이 사랑해야 한다. 즉, ‘나’라고 힘껏 소리치며 우쭐대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분명 자신의 내면에 있으면서도 정작 ‘나’라고 소리치지 못하는 불쌍한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을 구별해야 한다는 말이 내 안에 있는 잘난 모습, 소중한 가치들을 소홀히 하라거나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누가 보아도 ‘사랑할 만한’ 나의 모습은 주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인 동시에 매우 중요한 나의 영적 자산이다.

사랑할 만한 진실한 나의 모습들을 기꺼이 사랑하라. 그리고 자랑스러운 나의 모습들을 결코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분명한 거짓이며, 또 다른 영적 교만이다.

그러나 절대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자신을 과시해는 자기 자랑의 굴레에 갇혀서는 안 된다. 자기 자랑은 자신을 교만의 수렁에 빠뜨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픈 상처를 준다. 자랑할 만한 소중한 가치와 자산을 과시하지 말고, 잘난 모습을 헛되이 자랑하지 말고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라.

주님이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면 그것은 나의 탐욕을 채우라고 악한 도구로 주신 것이 아니다. 나만큼 소유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유익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값진 은사이다. 주님의 절대 계명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듯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밝히 전하라며 거룩한 사명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거짓 없이, 그리고 숨김없이 자기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주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무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잘난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지지리 못난 모습, 상처 입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새삼 들춰내면 너무 아프고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안의 감방에 꽁꽁 가둬두려 하지만 상처 입은 나의 영혼은 묶인 채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고 끊임없이 나에게 소리치고, 아프다고 쉴 새 없이 탄식하며 사근사근 나의 영혼을 갉아 먹는다.

사랑할 만한 것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든지 가벼이 따를 수 있는 감각적, 본능적 사랑이다. 마음 가는 대로 그저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사랑이다. 반면에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애써 마음을 열고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사랑이다.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 가운데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기꺼이 사랑하는 것은 분명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이기적 사랑이 아니라 주님이 일깨워주신 이타적 사랑이다. 내 안에 있는 ‘다른 나’를 마치 다른 사람처럼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가 주체가 되는 사랑이 아니라 사실은 객체가 되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새로운 사랑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이기적 자기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 사랑이다. 다시 말해 1인칭 ‘내’가 아니라 2인칭 ‘너’와 3인칭 ‘그’, 이르테면 다른 상대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여기에 ‘자기 사랑’의 중요한 비밀이 담겨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일인칭인 ‘내’가 아니라 ‘나의 영혼’으로 나와 가슴을 열고 대화하는 순간 이인칭이 되고, 깊이 묵상하면서 삼인칭이 되는 객체이다.

‘나’는 분명 1인칭인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가? 다음 구절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란다. “내 영혼아 너는 어찌하여 내 안에서 괴로워하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화자(나)는 1인칭이고 조심스레 그 말을 듣고 있는 나의 영혼은 ‘너’로 대치되면서 2인칭이 된다.

내가 나를 진실로 사랑할 때 나의 영혼은 반드시 사랑받아야 하는 소중한 대상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자기중심의 이기적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타적 사랑의 상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까지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주님은 우리에게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 주셨다.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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