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4)

자기 사랑과 자기 자랑(4)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눅 6:32-33

원수를 사랑하며, 자신을 모욕하고 괴롭히는 자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은 단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이타적 사랑에 머물지 않는다.

자기 자랑에 사로잡힌 자아(ego)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부인해야 하는 이기적 사랑이다. 반면에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의 굴곡진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마치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이 ‘상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하되 원수까지도 기꺼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자기 사랑의 경우에도 어김없이 해당된다. 즉, ‘나’를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숨어있는 ‘다른 나’, 내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나의 끈질긴 원수인 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나, 나를 모욕하는 나, 내 안에서 잔뜩 움츠린 채 애처로이 숨어있는 나를 진정 사랑해야 한다. 내 안에 있으면서도 그리고 분명히 나이면서도 감히 나라고 말 못하는 나, 내 안에 숨어서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숨은 존재가 분명히 내 안에 있다.

자기 사랑을 위해서는 내 안의 좁디좁은 골방에 갇혀 고통스레 신음하는 자신을 먼저 구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너무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지독한 열등감이며,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차디찬 분노이며, 끝내 아물지 않는 아픈 상처이며, 가슴 저린 슬픔이며,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못하는 검은 죄악이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려면 자신의 내면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자신에게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끈질긴 열등감을 고이 쓰다듬고, 슬픔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상처를 애써 치유하며, 죄를 담대히 용서해야 된다. 내 안에 갇혀 신음하며 남몰래 애처로이 눈물 흘리는 불쌍한 ‘나’를 긍휼히 여기며 흔쾌히 사랑해야 된다.

내 안에 있는 다른 나, 내가 그토록 멀리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골방에 갇힌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이제 나에게, “네 안에 있는 보잘 것 없는 들을 마치 예수를 사랑하듯 진실로 사랑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래야 비로소 사랑을 알고 거짓 없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처로 고통 받은 자신을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죄를 짓고서 제멋대로 자신의 죄를 용서하며, 죄를 마치 정당한 이유가 있는 양 합리화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주권은 오직 주께 있다. 먼저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는 죄를 낱낱이 드러내 주께 고백하고 용서받아야 한다. 죄는 억지로 숨긴다고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질되고 부패되어 지극히 악한 독을 품게 된다.

주님은 성령을 훼방한 죄 말고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불신앙의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며,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순간, 다시 말해 온전한 신앙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다. 주님의 용서를 받고나면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제 내 차례이다. 내 안에 숨은 죄를 담대히 용서해야 한다. 그때 그리스도의 성령이 도우신다!

자기 자랑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슬금슬금 탐욕의 타락한 신앙에 빠져든다. 반면 참된 자기 사랑을 실현하는 사람은 진실한 영성, 곧 사랑의 영성을 소유하며, 사랑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몸으로 실천하게 된다.

결론을 내린다. 자신에 대해서 자랑할 만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반면에, 내 안에 숨어있는 초라한 나를 사랑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 비천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는 진정 자기를 사랑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사랑의 영’으로서 그리스도의 성령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데 정작 주님의 종인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신앙의 사슬에 묶여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자기를 먼저 사랑하자. 내 안에 있는 초라하고 비천한 것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자. 잘난 것들은 ‘그래서’ 사랑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용하고, 못난 것들은 ‘그래도’ 사랑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아름답게 가꾸며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선한 도구로 사용하자.

자기 사랑을 애써 주장한 이유는 자기만족을 통해 인생을 보다 즐겁게 살자는 이기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라야, 그리고 자기의 내면에 숨어있는 쓰디쓴 상처를 치유하는 자라야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이며 나도 그를 사랑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자’라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속한 자로서 진정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거짓된 탐욕을 이기고 마침내 구원 신앙의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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