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성도가 취할 우선순위…

‘교회개혁’을 위해 성도가 취해야 되는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가정을 전제로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가정법은 엄연히 존재하는 표현기법인 동시에 문제제기로서 매우 효과적인 도입이기에 부담 없이 가정법을 사용해서 말하고자 한다.

만약에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가 설교하면서, “예수가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났다.”라고 말했다면,

이어서, “나는 뚜렷한 환상을 통해서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성경과 전혀 다른 직통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새로운 진실을 즉각 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라고 말한다면, 순복음교인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용기 목사를 ‘위험한 이단’이라고 꾸짖을까?

글쎄, 섣불리 단정하기는 힘들겠지만 대부분이 ‘하나님의 직통계시’라는 말에 너나없이 아멘! 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나아가 직통계시를 받은 ‘우리 목사님’의 신령한 영력에 절절이 감동하며 목청 높여 ‘할렐루야’!를 외칠 것만 같다. 나만의 착각이기를 바라지만…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하더니 요즘은 ‘빤쓰 목사’로 교회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전광훈까지 무대에 등장해서, “내가 셋째 하늘에 갔다 왔다. 많고 자세한 내용들은 나중에 말하겠다.”며 이른바 바울 코스프레에 열중이다.

그의 의도는 결국 “나를 사도로 대접해달라”는 것일 텐데,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면 이렇다. 지금까지 보았던 전광훈의 믿음과 행동을 토대로 판단한즉, 그가 갔다 올 수 있는 ‘셋째 하늘’이라면 가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빤쓰를 벗으라면 벗고 문서를 내놓으라면 내놓는” 열혈 맹신도가 있기에 전광훈이 ‘기독교인’이라면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전광훈과 그에게 맹종하는 교인들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목사의존신앙에 사로잡힌 대다수 교인들의 처참한 몰골이기에 우리는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위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화두로 ‘교회개혁’을 외치지만, 지금처럼 목사숭배가 만연한 한국교회의 척박한 토양에서 과연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나의 대답은 주저 없이 ‘불가’이다.

‘담임목사’가 교인들 위에 우상처럼 군림하는 한국교회에서 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개혁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반교회적 망동’으로 매도되기 때문이며, 오늘날 교회개혁운동의 진부한 방식으로는 결코 목사교회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일부 목사들의 비리와 일탈에 대한 고발과 비판, 그리고 제도의 수정이나 보완 따위로 간단히 이뤄질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개혁을 포기하고 한국교회를 이렇게 ‘목사교의 메카’로 내버려두는 것이 옳은가? 그럴 수는 없다. 이유는, 성경이 뚜렷이 밝힌 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교회 없는 그리스도 신앙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 신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은혜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참담한 현실 앞에서 우리가 진정한 교회개혁을 위해  취해야 되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성도로서 선택해야 되는 개혁의 길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것은, 성도가 먼저 깨우치고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적’과 맞설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만만한 일일 수 없으며 특정한 ‘왕도’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개혁성도로서 교회개혁을 위해  우리가 먼저 취해야 되는 우선순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교회타락의 ‘공동정범’ 맹신도가 득실대는 한국교회를 바라본즉, 성도의 바른 깨우침이 절실하며 그 출발과 근본이 모름지기 ‘성경’이라는 사실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 신앙은 태초에 말씀(Logos)으로 존재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섬기는 신앙이기 때문이며, 성경은 말씀의 충실한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사상 가장 타락한 한국교회의 개혁이 분명 치열한 영적 전쟁이기에 우리는 응당 필승의 영적 무기인 말씀의 검으로 저들과 맞서고 승리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때 비로소 한국교회는 새로운 길, 바른 길로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타락한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성경을 올곧게 가르치는 교사를 만나는 것이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가는 것만큼 힘들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종교적인 교리나 타성적인 관습을 가르치기에 급급하고, 학자연하는 자들은 ‘내가 복음’의 신학 전수에 연연하는 현실에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는 충실한 성경교사를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천편일률적인 성경공부나 강의보다는 차라리 뜻을 같이 하는 성도의 ‘바이블 스터디 그룹’을 권한다. ‘아마추어’ 성도가 끼리끼리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는 게 어딘가 어쭙잖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여럿이 모여 격의 없는 ‘토론식 성경모임’을 진행하면서 의외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모임이 형성되는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며, 지금처럼 타성적인 성경공부와 비교되지 않는 소중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현장에서 느낀 바는,

마치 민주주의가 숱한 비효율성과 더불어 다양한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현존하는 최선의 제도인 것처럼, 이제 성경공부도 특정한 개인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주입시키는 ‘도제식’ 방법보다 성도의 수평적 참여를 통해 성경이 담고 있는 ‘공적 메시지’를 깨닫는 방법을 고려할 때가 되었다.

“누가 가르치느냐”를 떠나서 정작 중요한 것은, ‘말씀(성경)의 사람'(Man of the Book)으로서 성도가 바른 믿음을 갖는 출발점은 성경의 바른 깨달음과 적용(순종)이라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교회개혁을 위해서도, 자칫 자기 의에 빠지기 십상인 진부한 도덕담론을 넘어서 성도가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을 깨우치는 기준과 원칙이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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